FBBS 소개
설교 자료실
Springwater Baptist Church

 

 

 

 

 

빌리그래함 목사의 사역

 

 

빌리 그래함의 초기 사역은 시카고 근교의 작은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Youth of Christ 를 조직 할 때쯤, 그는 젊은 설교자로서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아직 젊은 나이에 미네아 폴리스에 있는 기독교 대학 Northwestern School의 학장이 되었다. 그 학교를 세운 유명한 근본주의자 William B. Riley는 개인적으로 그가 성공하도록 빌리 그래함을 추천해 주었다. 몇 년 후에 교육이 그의 분야가 아닌 것을 확신하게 되자 그는 사임한 후 복음전도 사역에 전력은 다 하였다. 그 때 그는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로 알려져 있었고 그에 대한 협력과 후원을 그 그룹에서 도왔다. 확실히 그의 초기 사역은 근본주의이며 현대 신학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었다.

빌리 그래함의 다중적인 타협

몇 년 동안에 점차적으로 그는 근본주의자의 위치에서부터 멀어졌다. 처음에 죤 라이스와 같은 자들은 그를 옹호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성경을 믿는 자들에게 그래함의 행동에 대해서 납득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라이스, 밥 죤스, 칼 메킨타이어와 다른 많은 근본주의 지도자들은 그래함이 가고 있는 가슴 아픈 타협에 대하여 경계하기 시작하였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본다.

1957년 뉴욕 전도운동(Crusade): 자유주의자로 악명 높은 유니온 신학교의 학장인 Henry P. Van Dusen 이 그 운동 위원회의 후견인이었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의 입증”이라는 책을 쓴 자이다.

1958년 샌프란시스코 전도운동: 이 복음 운동의 공동 의장은 칼 호위였다. 그는 노아의 홍수와 엘리사의 기적과 창조의 이야기와 같은 사건들을 그의 책 <구약이야기>에서 자유주의적인 관점을 드러낸 자유주의자의 리더였다. 자유주의자 호위는 복음주의자 그래함과 함께 복음 전도를 하고 있었다.

1961년 그래함이 뉴델리의 WCC(세계교회협의회) 모임에 참가(비평가가 아닌 동료로서).

1963년 로스앤젤레스 전도운동: 유명한 감리교 자유주의자 감독 제랄드 케네디는 이 대회에 리더로 참여하였다.

1965년 그래함이 벨몬트 에비의 로마 카톨릭 대학교 학생들과 교직원들 앞에서 연설하였다. 주 안에서 한 형제임을 역설하였다.

1966년 그래함이 마이아미에서 열린 NCC(전국교회협의회)에서 연설하였다. 그는 몇 명의 자유주의자 목사들을 칭찬을 하고 그의 앞에 앉아있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한마디의 비난도 하지 않았다.

1968년 노스 캐롤라이나 벌몬트의 카톨릭 연합에서 빌리 그래함이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Institute for Ecumenic Dialogues의 주 연설자였다.

1969년 미네아폴리스에서 그래함에 의해 전미 복음 전도대회가 개최되었다. 주요 사건은 Rock 뮤직으로 가득 찼으며. 흑인 민권 운동가 랄프 에버네티가 연설하였다. 아침 기도회는 로마 카톨릭 신부가 인도하였다.

1971년 로마 카톨릭 신부가 오클랜드의 복음 전도운동에 참가하였다.

1973년 레이튼 포드가 10월 21일 밀워키에서 연설한 것을 그래함이 이렇게 묘사했다. "그가 로마 카톨릭 대성당에서 미사에 참석하고 설교한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경험인가!"

아마도 빌리 그래함의 문제가 현재의 분리주의자들에게 직면한 가장 곤란한 문제일 것이다. 그는 인격적인 인물이며 "거듭남"에 대한 설교를 한다. 그의 사역은 수백만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빌리 그래함과 같은 훌륭한 사람을 비판한다는 것은 국가와 조국, 또는 주님을 비판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쟁점은 빌리 그래함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사람보다 더 깊고 먼 곳에 있다. 문제는 영적인 것이다. 그것은 훌륭한 한 설교자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사단의 교리로부터의 분리에 관한 성경적인 가르침에 대한 논쟁이다. 성경을 믿는 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들과 타협할 수 있는가?

빌리 그래함 복음 전도 운동의 비극적인 결과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울타리를 무너뜨리려는 시도:

빌리 그래함의 운동은 수 세기 동안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 세워졌던 울타리를 파괴하려는 노력의 일부였다. 이것이 신 복음주의의 주된 목표이다. 근본주의를 대표하는 대대로 전해 내려온 기독교의 믿음과 현대 종교적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그 믿음을 통합하려는 것이 목적이며 많은 성과를 올렸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교회들의 설립:

복음 전도대회 시 예수를 믿겠다고 나온 자들을 자유주의 신학 계통의 목사들에게 할당하여 갓 태어난 많은 양들을 변절한 목사, 늑대의 소굴로 보냈다. 누구든지 복음주의자들의 책임 중의 하나는 갓 태어난 양들을 성경적인 가르침과 주님의 방법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들을 복음이 선포되지 않는 교회로 보내는 것은 심각한 죄이다.

통합(포괄)주의 철학의 확산:

통합주의는 신학적 관점이 정반대인 사람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것은 전에 Northern Baptist Convention (지금은 American Baptist Churches) 안에 보급된 개념이었으며 성경의 진리를 타협치 않는 많은 사람들이 탈퇴하는 결과를 가져왔었다. G.A.R.B.C는 그곳에서부터 분리되 나온 보수 구릅이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명령은 배교하는 자들과의 관계에서 떠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래함이 온 마음을 바친 이 원리는 현재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과 복음주의적인 단체들(외향적으로) 사이에서 채택되고 있다.

그래함이 이루어놓은 혼합된 캠페인은 기독교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사역을 통하여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지만 즉 열매를 거두는 것은 훌륭한 일이나 하지만 그 과수원이 파괴되는 매우 비싼 대가를 치루고 있다.

Ecumenical Evangelism: A Violation of Scriptural Principles

여기에 왜 보수주의자들이 빌리 그래함의 원리를 지지 할 수 없는지 요약한다.

(1) 우리는 믿음을 지키지 않는 자들과 분리한다(딤후3:5).

(2) 우리는 신실하지 않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대하9:2).

(3) 우리는 믿음을 부인하는 자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갈1:6-9).

(4) 우리는 협력하기 전에 개인의 신학적 위치를 시험하고 영적인 노력을 확인한다(요일 4:1).

(5)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과 주님의 일을 함께 하지 않는다(고후6:14).

(6) 우리는 교리의 순수함을 희생시키면서 강제적으로 연합하지 않는다(유3).

(7) 우리는 불확실한 교리의 사람들과는 협력하거나 협력을 장려하지 않는다(요이10-11).

마음에 큰 아픔을 겪으면서 많은 분리주의자들이 빌리 그래함과 협력할 것을 거절하였다. 우리가 그와 동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사랑한다. 우리는 그가 선한 길인 옛길로 돌아오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